밀과 보리 재배(겨울 땅을 살리는 겨울 농사의 주인공)
밀은 일찍이 우리 땅에서 사라졌습니다. 한국 전쟁 후 미국의 식량으로 서양밀이 밀려들어와 우리 토종 밀이 자리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밀 제일의 수출국이 된 미국 밀의 기원을 찾아보니 우리의 밀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이는 오랫동안 우리의 토종종자를 찾아 전국과 해외을 돌아다녔던 농진청의 농업과학기술원에 있는 모 박사님에 의해 알려졌습니다.
서양의 밀은 키가 커서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쉽게 쓰러져 생산량이 적은데, 우리밀 중 키가 작아 잘 쓰러지지 않는 앉은뱅이 밀을 일본이 가져가 개량을 했고 이를 다시 서양에서 교잡하여 지금의 밀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밀은 보리와 함께 대표적인 겨울 음식으로 찬 성질을 갖고 있고,. 반면에 쌀은 뜨거운 여름 햇빛을 받고 자라 따뜻한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둘을 섞어서 먹어야 따뜻한 기운의 음식과 찬기운의 음식을 조화롭게 섭취할 수 있습니다.
여름에 냉음료로 먹는 전통 음식인 미숫가루를 밀과 보리 위주로 만드는 것도 더운 계절에 찬 음식을 먹음으로써 몸의 균형을 유지하고자 함입니다.
밀의 성분은 70%가 탄수화물이고 단백질이 8~12%, 그외 지방이 소량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칼로리가 높아 주식으로도 좋으나 필수아미노산 중 리신의 함량이 모자라 쌀보다는 영양가가 떨어집니다. 말하자면 주식보다는 부식으로 알맞다는 말이 됩니다.
우리 밀은 시장에서 파는 서양 밀에 비해 끈기가 적어 밀가루용으로는 단점이 있지만 그 맛이 구수하고, 또 방부제를 많이 친 서양 밀에 비해 우리 밀은 겨울에 재배하기 때문에 전혀 농약을 치지 않는 건강식품이라는 장점이 있습니다.
밀을 소맥(小麥)이라 하고 보리는 대맥(大麥)이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겨울 작물에서는 밀보다 보리가 형님뻘이 되는 셈입니다. 밀과 보리는 열매의 생김새나 포기의 생김새가 너무 비슷하여 보통 사람의 눈으로는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생김새만이 아니라 성질도 비슷하고 작물 생리도 매우 닮았습니다. 그런데 보리가 형님 대접을 받는 것은 열매가 약간 크고 도톰한데다, 보리는 밀과 달리 주곡으로 더 낫다는 점 때문인 듯 싶습니다. 단지 보리를 가루로 만들어 먹지 않는 것은 밀에 비해 끈기 성분을 결정짓는 단백질이 부족해서 입니다.
보리는 밀이나 쌀처럼 탄수화물이 대부분이고 단백질, 칼숨, 인이 중간정도 들어 있고 비타민 B가 약간 들어 있습니다. 특히 보리에는 각기병을 예방하는 비타민 B1과 B2가 백미보다 많이 들어 있어 건강식품으로 인기를 받고 있습니다. 게다가 고혈압, 당뇨 등 성인병 예방에도 탁월하며, 최근에는 노화와 암을 예방하는 셀레눔이 함유되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밀과 보리는 겨울에 농사를 짓기에 풀도 없고, 벌레도 없어 무공해 농사가 가능한 작물입니다. 거기에다 겨울의 땅을 놀리지 않고 작물을 심기에 대기를 깨끗하게 해주고, 흙의 생명을 지켜주기에 환경파수꾼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입니다.
밀과 보리는 길게는 1만년이나 되는 꽤 오랜된 재배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보리는 티베트가 원산지로 알려져 있으며, 밀은 중동 지역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은 보리가 기원전 5백년경, 밀은 기원 전 2백년경으로 추산하는데, 거의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우리 밥상의 잡곡으로 오랫동안 자리를 잡아왔습니다.
서양밀에 의해 점차 자취를 감추던 밀이 최근에 우리밀 살리기 운동으로 일부 농민들이 재배하여 다시 살아나고 있는 듯하나 아직은 그 양이 미미합니다. 밀 만큼은 아니지만 보리도 재배면적이 줄어들고 있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밀과 보리는 규모가 적은 텃밭농사에서는 적절한 작물은 아니지만 벼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을 위한 자연교육의 소재 또는 관상용으로 심으면 텃밭의 가치가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밀과 보리는 겨울에 심어 키우는 것이므로 재배하는데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습니다. 풀과 벌레들이 모두 동면에 들어갈 늦가을에 심기 때문에 풀과 병해충 걱정이 없고, 3~4월에 집중적으로 생육을 하기에 다른 풀들이 자랄 틈을 주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밀과 보리는 봄의 풀들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밀과 보리는 특별히 거름을 주지 않아도 잘 자라므로 어떻게 보면 공짜로 농사를 짓는 셈이라고 하겠습니다.
파종시기
밀과 보리는 중부와 남부지방의 경우는 10월 중순에서 11월 초순까지 파종을 하고, 잎이 5~6장 나오고 나서 겨울을 맞이해야 겨울을 잘 견딘다고 합니다. 이 시기가 지나 파종을 하면 추위로 인한 피해 및 생육부진 등으로 수확량이 떨어지므로 이듬해 이른 봄에 파종하는 것이 좋습니다.
밭 만들기
밀과 보리는 힘들게 이랑을 만들지 않아도 됩니다. 산성 흙이라면 숯가루나 석회가루를 뿌려 둡니다. 텃밭에선 자투리 땅이나 밭 둘레에 몇 포기를 심어 관상용으로 즐길 수도 있습니다. 약간이라도 잡곡밥으로 먹을 요량이면 대여섯평 되는 밭에 심어 키워 먹어도 좋습니다.
보리를 파종할 밭을 만들때는 전에 키운 작물을 베고 난 뒤, 잔재물을 태운 재 또는 아궁이에서 나온 재를 밭에 뿌린 후 파종을 합니다. 대규모인 경우는 재와 보리를 뿌린 후 밭갈이를 하고, 작은 규모인 경우는 재를 뿌린 뒤 씨앗을 흩뿌리거나 괭이로 줄을 긋고 줄파종을 합니다. 텃밭에서는 점뿌림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척박한 토양일 경우에는 10월 중순에 파종을 해서 초기 생육을 북돋는 것이 좋은데, 파종 후 풀이나 왕겨 등을 덮어 동한 피해를 막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파종할 때 소금을 섞어 뿌리면 이듬해 가뭄 피해를 줄일 수 있는데 소금은 주변의 물기를 빠르게 흡수하는 성질 때문에 씨앗 주변의 수분 응집과 가뭄 내성을 유도하기 때문입니다.
씨뿌리기
특별히 제초 걱정이 없으므로 산파를 하는 게 좋습니다. 기존의 풀들도 날이 추워지면 누렇게 죽어가기 때문에 그냥 풀 사이사이로 뿌려주어도 됩니다. 흙으로 덮어주면 좋지만 그냥 뿌려만 두어도 지장은 없습니다. 나중에 풀들은 밀과 보리가 얼지 않도록 하는 방한복 역할도 합니다.
가꾸기
밀과 보리를 가꾸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추운 겨울에 뿌리나 싹이 얼지 않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부터 보리밟기 행사가 전통 풍습으로 있어 왔습니다. 겨울에 흙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뿌리가 들려지는데 그로인해 추위로 얼까봐 다시 발로 뿌리 주변을 밟아주어 뿌리에 차가운 공기가 들어가는 것을 막음으로써 추위를 막는 것입니다.
발로 밟는 것도 좋지만 포기 사이사이에 덮개를 깔아주는 것도 좋습니다. 왕겨난 쌀겨는 열을 내는 소재이므로 이를 깔아주면 제일 좋고, 그렇지 않으면 산의 부엽토를 깔아 주어도 좋습니다.
거두기와 갈무리
밀과 보리는 3~4월이 되면 집중적으로 자라고 5월이 되면 이삭이 패는데 한달 후 수확을 합니다. 밀과 보리는 벼와 달라서 겉껍질을 벗기지 않고 현미처럼 그대로 밥으로 해서 먹을 수가 있습니다.
이삭이 누렇게 익고, 포기가 아직은 파랗지만 노래지기 시작할 때쯤 낫으로 베고, 낫으로 벤 것을 거꾸로 매달아 말립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짚에 남아있는 영양분이 이삭으로 모아지게 하기 위함입니다.
포기가 노래지면 털어내는데, 다음해에 종자로 쓸 것은 종자에 타격을 주지 않아야 종자가 튼튼하기 때문에 손으로 직접 훑어내고, 나머지는 바닥에 깔개를 깔아놓고 막대기로 탁탁 쳐댑니다. 털어낸 것들은 키로 까불려 검불과 분리합니다.
밀과 보리는 수확한 그 해에 파종할 것이 아니라면 보관에 유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좀이 잘 슬어 배아가 손상을 입어 발아율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잘 말린 쑥과 쑥대를 잘라 섞어 마대자루나 비닐에 저장을 해 놓거나 이듬해 여름에 저장해 놓은 것을 다시 꺼내 잘 말려서 보관하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좀으로 손상을 받은 씨앗이 있다면 파종을 할때 충분히 많이 뿌려야 합니다.